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끈 광개토대왕

광개토대왕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용맹함과 지혜로움 그리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떠오릅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고, 중국으로부터 고구려의 위상을 드높인 왕이기도 하죠. 또한 삼국시대 당시 한반도 정세를 주도하던 나라였던 만큼 많은 업적을 남긴 왕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사 시험에서도 자주 출제되는 인물 중 한 명이죠.

고구려 전성기 때 장수왕 다음으로 위대한 왕은 누구인가요?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대해 답하기 어려워하는데요, 정답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구려는 전성기에 비해 쇠퇴했을 때 국력이 많이 약해졌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굳이 꼽자면 고국원왕(소수림왕) - 광개토대왕 - 장수왕 순으로 꼽을 수 있겠네요. 소수림왕은 불교를 수용해서 국가 체제를 정비하였고, 태학을 설립하면서 인재 양성 및 중앙 집권화를 꾀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광개토대왕 시절엔 백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한강 이북 지역을 차지하게 되죠. 이후 장수왕 시기엔 남진 정책을 추진하여서 평양성으로 천도 후 국내성 일대의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남쪽으로는 아산만에서 죽령에 이르는 선까지 진출했어요. 이렇게 본다면 왜 장수왕이 아니라 광개토대왕이냐고 물으실 텐데요, 물론 장수왕 역시 훌륭한 왕이지만 대외 팽창정책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두 번째로 뽑았습니다.

장수왕 이전 시대 상황은 어땠나요?

위에서 언급했듯이 장수왕 이전까지는 계속 왕위 계승 문제로 인해 내분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4세기말 미천왕시기부터는 본격적으로 분열되기 시작했는데요,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낙랑군과 대방군입니다.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후 설치한 군현이었는데, 한나라가 망하자 여러 소국들이 독립하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힘이 강해진 거죠. 이러한 혼란 속에서 결국 모용씨라는 강력한 세력이 등장했으며, 선비족이라는 새로운 민족이 나타나면서 부여계 유이민 집단과의 결합을 통해 성장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5호 16국 시대가 열리면서 동북아시아 전체가 혼란스러워졌고, 북중국에서는 오호십육국 중 하나인 전진이 화북지방을 통일하였지만 얼마 못 가서 동진에게 밀려나게 됩니다. 한편 요동지역에서는 고구려 유민 출신인 이정기가 세운 제나라가 건국되면서 한때 산둥반도 일부까지도 지배하기도 했죠.

왜 하필이면 광개토대왕이었나요?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18세의 나이에 즉위한 광개토대왕은 즉위하자마자 대대적인 정복활동을 벌였습니다. 우선 북쪽으로는 거란 정벌을 위해 군사를 보냈으며, 서쪽으로는 후연을 공격하여 요동 지방을 확보하였죠. 동쪽으로는 숙신을 복속시켰고, 남쪽으로는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유역을 점령하였으며 신라와는 우호관계를 맺었습니다. 이렇듯 활발한 정복 활동을 벌인 결과 64개의 성과 1400여 개의 촌락을 획득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곧 만주 대부분과 한강 이북까지의 땅을 차지했다는 뜻이며, 현재 대한민국의 국경선과도 일치한다고 하네요. 게다가 영락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영락'이란 하늘의 자손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따라서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이렇듯 뛰어난 업적을 남겼던 광개토대왕이었지만 안타깝게도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아마 너무 무리한 정복전쟁을 펼친 탓이겠죠. 만약 조금만 더 오래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지금까지 광개토대왕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