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 중의 폭군으로 불리는 연산군
연산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으신가요? 저는 폭군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요. 조선시대 최악의 왕 중 한 명인 연산군은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아볼게요.
연산군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을 알려주세요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연산군일기라고 하여 총 두 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첫 번째 권은 연산군 재위시절 기록이고, 두 번째 권은 폐위 이후 기록입니다. 이때 실록 편찬 과정에서 사초들이 소실되는 일이 발생하는데 이를 무오사화라고 합니다. 당시 사관이었던 김일손이 자신의 스승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항우에게 죽은 초나라 의제를 추모하는 글)을 사초에 실은 것이 발단이 되어 훈구파였던 유자광 등이 일으킨 사건이죠. 이로 인해 많은 선비들이 죽거나 귀양을 가게 됩니다. 이후 연산군은 어머니 윤 씨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으로 갑자사화를 일으키는데요. 이때 이미 죽은 생모 신 씨의 무덤을 파헤쳐 관을 꺼내 부관참시하였고, 할머니 인수대비를 머리로 들이받아 부상을 입혔으며, 후궁 두 명을 때려죽이는 등 잔인한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또한 성균관 유생들을 몰아내고 그곳을 놀이터로 삼았으며, 전국 각지에 채홍사를 파견하여 아름다운 처녀를 뽑아오게 하고, 운평이라 이름 붙여 궁궐 안에 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생 출신 장녹수를 불러들여 그녀의 치마폭에 싸여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겼습니다.
연산군 하면 왜 폭군이라는 수식어가 붙을까요?
역사상 모든 군주는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연산군은 다른 군주와는 다르게 신하들 위에 군림하려 했고, 심지어 백성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연산군을 폭군이라고 부릅니다.
연산군 시대 때 일어난 문화재 손실사건엔 어떤 것이 있나요?
대표적으로 경복궁 경회루 연못 준설공사가 있었습니다. 원래 이곳은 작은 호수였는데, 연산군이 큰 배를 띄우고 놀기 위해 크게 확장하였어요. 공사과정에서 나온 흙으로는 논밭을 만들었고, 돌로는 축대를 쌓았어요. 이렇게 만들어진 곳이 지금의 광화문 광장이랍니다. 이외에도 흥청망청이란 말로도 유명한 창덕궁 후원의 금원 조성사업 역시 연산군 시절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