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궁녀는 오해?! 백제의 성군 의자왕

의자왕 하면 떠오르는 건 삼천궁녀죠? 하지만 실제로는 삼천궁녀보다는 훨씬 적은 궁녀들을 거느렸다고 해요.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무왕 때 왕후가 3000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과장된 표현이고 실제로 300~500명의 궁녀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궁녀들을 어떻게 먹여 살렸을까요? 그건 바로 쌀농사 덕분입니다. 우리나라 최대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에서는 매년 10월이면 추수감사제 성격의 행사인 '마한제'라는 축제가 열리는데 이때 지역 특산물과 더불어 곡식을 바쳤다고 해요. 그리고 이것이 현재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답니다.

호남평야에선 어떤 농사를 짓나요?

호남평야는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일조량 덕에 벼농사하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이곳엔 전국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작물인 쌀이 생산되고 있죠. 특히나 김제 평야는 조선시대 때 한양으로 올라가는 세곡창고가 있던 곳이라 다른 지역보다 일찍 농업이 발달했어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에게 간척사업을 당해서 지금은 바다였던 땅이 논으로 바뀌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거대한 농지가 오늘날 대한민국 최고의 곡창지대이자 식량안보의 중심지가 되었답니다.

쌀농사는 언제부터 짓기 시작했나요?

삼국시대 이전부터 이미 한반도 남부지방 곳곳에서 벼농사를 지었다고 추정됩니다. 다만 통일신라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고 고려시대부터는 국가차원에서 장려하면서 더욱 발전하게 됩니다. 또한 조선시대 들어서는 수리시설 확충 등 여러 가지 노력 끝에 드디어 자급자족 수준을 넘어서 수출까지 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죠.

조선시대 당시 농민들은 얼마나 살았나요?

조선시대 농부들은 대부분 소작농이었어요. 자기 땅 없이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죠. 물론 지주라고 해서 다 나쁜 것만은 아니었어요. 양반 중에서도 부자양반이었던 지주들은 노비를 많이 소유하고 있었고 이를 이용해 자신의 땅을 경작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여전히 가난한 양민들은 평생 일해도 먹고살기 힘들 만큼 어려운 삶을 살았어요. 심지어 세금조차 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죠. 그런 상황 속에서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고 결국 신분제 폐지와 토지개혁을 주장하며 나라를 바꾸자는 운동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우리 식탁 위에 올라오는 밥 한 톨마다 수많은 역사가 담겨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저는 이번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요, 앞으로는 음식을 먹을 때 감사한 마음을 갖고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분도 맛있는 식사 하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