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인가 건국 위인인가 위화도 회군 태조 이성계

태조 이성계는 조선시대 왕 중에서도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고려 말 혼란스러운 시기에 위화도 회군을 통해 정권을 장악했고, 이후 1392년 7월 16일 개성 수창궁에서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1910년 8월 29일 일제 강점기로 인해 국권을 상실하면서 519년 역사의 조선 왕조는 막을 내렸다. 이처럼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을 ‘태조’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수많은 왕 중에서 유독 태조라는 칭호를 붙였을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첫 번째로는 창업자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고, 많은 희생과 노력이 뒤따른다. 그래서 건국 시조인 태조에게는 특별한 호칭을 부여했다. 두 번째로는 후대 임금들이 본보기로 삼아야 할 만큼 훌륭한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는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성군이었기 때문이다. 네 번째로는 후손들을 위해 남긴 유훈(遺訓)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정치적 정통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 등을 종합해서 내린 결론이 바로 ‘태조’다.

그의 업적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는 당 태종 이세민, 송 태조 조광윤, 명 태조 주원장, 청 태조 누르하치 등 역대 황제나 군주 가운데 탁월한 업적을 세운 이를 칭송하기 위해 태조나 고조 같은 명칭을 붙였다. 특히 명나라 때부터는 제후국이라도 개국 군주는 반드시 태조라 칭하도록 했다. 이것은 천자가 될 자격이 있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랑스럽게 여기는 세종대왕 역시 원래는 묘호가 없었다. 하지만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고종황제가 즉위하면서 비로소 정식 묘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