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진정 폭군이 맞는가?! 실리주의 대표주자 광해군

 광해군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중립외교입니다. 당시 조선은 명나라와의 사대관계를 맺고있었는데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 도와준 은혜를 갚으라고 압박했고 이에 광해는 실리주의 외교를 펼칩니다. 하지만 인조반정으로 인해 폐위되고 맙니다. 최근 영화 <광해>가 개봉하면서 다시한번 주목받고있는 광해군과 관련된 역사속 인물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시대 왕 중 유일하게 후궁이 없었던 왕은 누구일까요?

바로 선조입니다. 왜란 이후 많은 공을 세운 신하들이 있었지만 선조는 자신의 아들인 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적자인 영창대군 대신 서자였던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했죠. 그러나 적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견제당하며 불안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결국 1608년 선조가 세상을 떠나고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지만 즉위하자마자 역모사건이 일어나며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이때 인목대비 김씨(영창대군 어머니)가 어린 영창대군을 데리고 궁 밖으로 나가버리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됩니다. 이를 빌미로 서인세력이 주도한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광해군은 강화도로 유배되어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임진왜란때 도망간 왕은 누구일까요?

그 주인공은 바로 선조입니다. 1592년 4월 13일 부산포 앞바다에 일본 군함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것이 바로 임진왜란의 시작이였습니다. 전쟁 발발 소식을 접한 선조는 곧바로 한양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개성-평양-의주 등을 거쳐 의주 근처 평안북도 강계군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일본군과의 전투 끝에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백성들은 굶주림 속에서도 의병활동을 하며 나라를 지켰지만 정작 임금이었던 선조는 자기 몸하나 살겠다고 이리저리 도망다니기 바빴습니다. 심지어 평양성 탈환작전에서는 성 안에 남아있던 식량을 모두 불태워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물론 모든 책임을 선조에게만 물을 순 없지만 무능한 군주였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영화 <광해> 실제 모델은 누구일까요?

<광해>는 2012년 9월에 개봉한 영화로 누적관객수 1232만명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특히 이병헌 배우의 1인 2역 연기가 돋보였는데요, 그렇다면 과연 누가 진짜 광해군이었을까요? 정답은 허균입니다. 실제로 허균은 대동법 시행, 호패법 실시, 인재등용 등 여러 업적을 남겼으며 개혁정치를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도승지 시절 세자책봉 문제로 광해군과 갈등을 빚기도 했는데요, 이러한 인연으로 봤을 때 둘 사이엔 공통점이 꽤 많습니다. 다만 두 사람 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는 점에선 차이가 있네요.

오늘은 비운의 왕 광해군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지만 막상 제대로 알고계신 분들은 많지 않을거라 생각되는데요, 이번 기회에 광해군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되셨다면 좋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좀 더 유익한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