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하면 떠오르는 인물 중 한명인 장영실은 세종대왕 시절 조선만의 독자적인 시간과 절기를 만들어낸 대단한 사람입니다. 특히나 우리나라 최초의 물시계인 자격루(물시계) 제작 및 해시계 앙부일구 등 다양한 발명품을 개발함으로써 백성들이 농사를 짓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장영실이었지만 노비 출신이라는 신분제약으로 인해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영화 ‘천문’ 개봉 이후 재조명 받고있는 상황입니다.
장영실의 어린시절은 어땠나요?
장영실은 동래현 관아의 노비였습니다. 당시 노비는 물건취급을 당하며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불구하고 장영실은 열심히 공부하였고, 결국 태종 때 발탁되어 궁중기술자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세종 대왕에게 발탁되어 본격적으로 관직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는 천민신분에서 벗어나 정식관직을 얻게 되었고, 종3품 상호군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장영실의 대표적인 발명품으로는 어떤것이 있나요?
대표적인 발명품으로는 앞서 언급하였던 자격루 (물시계), 측우기, 앙부일구등이 있습니다. 먼저 자격루는 물의 흐름을 이용하여 시각을 알려주는 장치이며, 세계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는 비의 양을 재는 기구이고, 앙부일구는 그림자를 보고 시간을 알 수 있는 해시계입니다. 이외에도 천문관측기구인 혼천의, 간의 그리고 금속활자인 갑인자 등등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었습니다.
장영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무엇인가요?
영화 ‘천문’에서는 장영실이 명나라 사신들을 접대하던 도중 술에 취한 채 가마를 타고 가다 넘어져 불경죄로 처형당했다고 나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1442년 음력 윤사월 초닷새에 문방리 근처에서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록상으로는 과로로 인한 병환이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도 장영실의 삶에 대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만큼 장영실은 위대한 위인이었고, 현재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랑스러운 존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장영실 선생님께 감사인사를 드리며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